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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회 임시회(강혜련의원) - 오키나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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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회 남구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
일시 : 2013.6.12.(수) 14:00~
장소 : 울산 남구의회 5층 본회의장
내용 : 5분자유발언 - 오키나와를 다녀와서

지난 5월 20일부터 24일까지 남구의회는 오키나와를 다녀왔습니다. 어쩌다 한 번씩 주둔한 미군의 성폭행 사건 등으로 뉴스에 오르내리던 이 지역에 본의원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영화로 만들어진 오쿠다 히데오가 쓴 ‘남쪽으로 튀어’라는 소설을 보면서였습니다. 주인공이 국가주의에 환멸을 느껴 고향인 오키나와를 가게 되는데 거기서 다시 고향을 지키기 위해 일본 본토와 현지의 권력층, 개발업자들과 싸우는 과정을 통쾌하게 그리고 있는 소설로써 오키나와가 일본과는 무언가 다른 전통을 가진 독립국이었음을 밝히고 있는데 우리가 역사 교과서에서 보았던 ‘유구’라는 지역이 바로 오키나와였습니다. 열려 있는 바다의 끈이라는 뜻을 가진 오키나와는 인구 141만으로 울산과 비슷한 규모와 면적 2,275.7㎢인 곳으로서 휴양지로도 이름이 나 있지만 이미 평화기행이라는 명목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 지역으로서 그만큼 오키나와가 가지고 있는 역사와 전통은 현대사에 있어서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대략 1세기 동안에 ‘독립 유구 왕국’에서 1879년 일본의 식민지로, 철의 폭풍이라 불리워질 정도로 처참했던 1945년 최악의 전쟁터로, 그리고 미국의 식민지로, 다시 일본으로 복속되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던 이곳은 어쩌면 우리의 복잡한 역사와 많이도 닮아 있습니다.
첫째 날 둘러보았던 나하의 평화기념공원 안에 있던 한국인 위령탑은 일본에 의해 끌려와 죽은 우리나라 전몰자들을 기리고 있었으며 그 아래 비석들에는 300명의 한국인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조국과 국가는 과연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념관 바로 앞은 탁트인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 태평양이었는데 전쟁 때 많은 사람들이 절벽에서 투신을 한 장소라는 설명을 들으면서 오키나와 곳곳이 다르게 보였습니다. 그 근처에 히메유리탑은 전쟁 때 여고생 간호사들이 미군에게 잡힐까봐 집단 자결한 곳으로 갖가지 색의 종이학들이 그들의 영혼을 기리고 있었습니다.
둘째 날 방문한 이 지역 특산물인 파인애플 농장, 그리고 아시아 최대 규모의 수족관인 츄라우미는 오키나와 특유의 기후와 토양, 입지 조건을 잘 이용하여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미 그 전에 보았던 버려진 병들을 수거해 인공경석을 만드는 공정이나 자체 맥주공장 시설을 견학하면서 거창하진 않지만 나름의 산업을 활성화 시키고자 하는 그들의 의지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다를 끼고 있는 특성상 소금을 생산해 내는 시설을 둘러보았는데 열을 가열하여 소금을 얻는 방식이 우리와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찌리찌비라는 전쟁 당시 어린아이를 포함해 140여명의 마을 주민이 서로를 죽이며 자살한 동굴은 아직 느껴지는 그 서늘함과 오싹함이 생생할 정도로 비극적인 곳이었습니다. 이곳은 얼마 전 제주도의 아픔을 다루었던 지슬이라는 영화를 연상케 하였는데 전쟁이 아무런 잘못 없는 민중들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는 장소였습니다. 이러한 참상과 끔찍함을 그림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던 곳이 바로 근처에 있던 사카마미술관이었습니다. 유명한 평화 미술관으로 당시의 비극을 묘사하고 있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숙연케 만들었습니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옆이 후텐마 미군 해병기지가 있었는데 시의 면적의 25%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가데나 미 공군기지와 더불어 오키나와 최대의 미군기지라고 했습니다. 일본 전체 주둔 75%인 미군의 3만 5,000명이 주둔한 이곳은 전쟁이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오키나와를 다니면서 수시로 볼 수 있었던 헬기와 비행기들이 아주 낮게 날아 주민들의 피해가 많다는 안내인의 설명을 들으면서 아직도 싸움이 계속 되고 있는 제주 강정마을이 연상되었습니다. 군사기지가 들어서는 그 순간 평화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넷째 날 재래시장과 수산시장을 보면서 관광객들을 위한 그들의 서비스가 꽤 인상적이었으며 시내 곳곳이 화려하진 않지만 오밀조밀한 관광상품 개발로 사람들의 발길을 멈추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슈리성은 본 건물이 이미 전쟁 때 불타없어지고 지금 건물은 일본에 의해 복원된 것이라 고색창연한 맛은 없었지만 그 옛날 그들의 독자적인 왕국의 면모를 볼 수 있었던 장소였습니다. 동아시아의 모든 질곡이 결집되어 있고 전쟁에 의해 일본 속의 일본이 되고 여전히 미국의 영향력 아래 있는 오키나와, 지금 그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 해답은 잠시 방문한 오키나와 시의회에서 본 미군기지반환특별위원회였습니다. 이미 독립국으로서 지위를 상실했지만 여전히 그들은 독립을 꿈꾸고 있었으며 아베정권의 군국주의 부활 책동에 맞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평화로워 보이지만 너무나 복잡다단한 오키나와의 현실, 수많은 전쟁의 상흔 속에서 또 다시 희생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평화를 위한 그들의 노력이 현재 남북대결이 극을 치닫고 있는 우리 상황이 겹치면서 이 땅에 평화에 대한 기원과 더불어 우리의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들에 대한 노력을…….